임상시험도 꼭 병원에 가야 할까? 집으로 들어오는 디지털 분산형 임상시험
며칠 전 신문에서 ‘AI 기반 디지털 임상시험’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EDC, Clinical Data, Workflow Automation 같은 낯선 전문 용어들이 많아 처음에는 무심코 넘길 뻔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임상시험도 꼭 매번 병원에 직접 가서 해야만 할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50대 후반이 되면서 ‘병원에 간다’는 말의 무게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젊었을 때는 예약 시간에 맞춰 혼자 다녀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연세 드신 부모님과 병원에 다녀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동 수단을 마련해야 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으며, 때로는 보호자가 하루 일정을 비우고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어떨까요? 정기적으로 먼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면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임상시험 기관에서 멀리 사는 사람에게는 참여 자체가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익숙한 임상시험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임상시험을 집에서도 한다고? 분산형 임상시험 DCT
최근 의료·제약 분야에서 주목받는 개념 가운데 ‘분산형 임상시험’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Decentralized Clinical Trial, 줄여서 DCT라고 부릅니다. 이름은 어렵지만 개념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임상시험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하나의 병원에서만 진행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꼭 필요한 검사나 처치는 병원에서 진행하되, 일부 상담이나 확인은 원격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구에 필요한 일부 데이터는 참가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수집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임상시험이 모두 집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병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병원에서 하고, 다른 장소에서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나누어 진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매번 병원을 찾아가는 대신, 임상시험의 일부 과정이 사람에게 가까이 오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왜 고령사회에서 DCT를 눈여겨볼까
분산형 임상시험이 흥미로운 이유는 최신 IT 기술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횟수를 줄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4년 발표한 최종 가이드에서 원격진료, 디지털 헬스 기술, 지역 의료기관 등의 활용 방법을 다루며, 이러한 방식이 참가자의 방문 부담을 줄이고 지리적·신체적 제약이 있는 환자의 참여 기회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고령자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20대가 병원까지 한 시간을 이동하는 것과 80대가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걷기가 힘들 수도 있고, 오랫동안 차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우며, 가족이 생업을 뒤로하고 동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DCT를 단순히 ‘임상시험을 디지털로 바꾸는 기술’로만 볼 것이 아니라, 환자의 이동 부담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줄여줄 것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의 건강 정보는 어떻게 받을까
그렇다면 연구자가 병원 밖에 있는 참가자의 정보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디지털 헬스 기술이 등장합니다.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한 원격 데이터 수집
스마트워치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손목에 차고 생활하면 움직임이나 심박수 같은 여러 정보가 기록됩니다. 몸 가까이에서 생체 정보를 기록하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술은 병원 밖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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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에서도 연구 목적에 적합한 디지털 헬스 기술(DHT)을 이용해 일부 데이터를 원격으로 수집합니다. 다만 일반 소비자용 스마트워치의 수치가 그대로 쓰이기보다는, 연구 목적에 맞는 기기인지와 측정 정확도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중요한 변화는 ‘장소’입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병원에 와야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를 이제는 생활공간에서 수집할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여기서 함께 알아두면 좋은 개념이 원격 환자 모니터링(RPM, Remote Patient Monitoring)입니다.
RPM 역시 환자가 병원 밖에 있을 때 디지털 기기로 건강 정보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DCT와 유사해 보이지만 목적이 다릅니다. RPM은 주로 일상적인 ‘치료 및 건강관리’ 맥락에서 사용되고, DCT는 ‘임상연구 프로토콜’을 진행하는 방식에 관한 개념입니다.
집에서 받은 데이터를 믿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집에서 기계가 측정한 숫자를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병원에서 기록한 정보와 집에서 측정한 정보가 여러 시스템을 오간다면 데이터 관리가 오히려 복잡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FDA는 전자 데이터를 사용하는 임상시험에서 데이터의 신뢰성, 품질, 무결성, 추적 가능성 등을 매우 엄격하게 다룹니다. 일반인의 언어로 바꾸면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들입니다.
- 이 숫자는 어디에서 언제 만들어졌는가?
- 중간에 데이터가 위·변조되거나 누락되지는 않았는가?
-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최초 생성 기록까지 다시 검증(Audit Trail)할 수 있는가?
디지털 데이터라고 해서 저절로 정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기기와 시스템을 거치는 데이터일수록 생성부터 전송까지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병원 기록을 왜 또다시 입력해야 할까
디지털 임상시험 자료를 찾아보다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국 FDA와 UCSF 연구진 등이 진행한 ‘OneSource’ 프로젝트입니다.
기존 임상시험에서는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HR)에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연구자가 눈으로 보고 임상시험용 전자자료수집 시스템(EDC)에 다시 일일이 수작업으로 입력해야 했습니다. 컴퓨터 안의 정보를 사람이 다른 컴퓨터에 다시 타이핑하는 비효율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OneSource 프로젝트는 표준화된 데이터를 이용해 EHR의 정보를 임상시험 EDC로 직접 전자 전송하는 프레임워크를 구현했습니다. 목표는 명확합니다. 반복적인 중복 입력을 없애고, 데이터의 오류를 줄여 품질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굳이 두 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줄여주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디지털 전환의 가치입니다.
2026년에는 ‘실시간 임상시험’까지 등장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움직임도 있습니다. 2026년 FDA는 ‘실시간 임상시험(Real-Time Clinical Trials)’을 추진하기 위한 개념검증과 파일럿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기존 임상시험에서는 각 단계마다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반면 FDA가 시험 중인 실시간 방식은 임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 데이터 신호를 규제기관과 더 신속하게 공유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지금 모든 임상시험이 실시간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며 가능성을 검증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종이 문서가 전자 데이터로 바뀌고, 이제는 시스템 간 실시간 연결을 통해 신약 개발의 속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병원의 문턱을 낮췄더니 ‘디지털 문턱’이 생긴다면?
이처럼 DCT가 주는 편의성은 크지만 한 가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기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의 문제입니다.
젊은 층에게는 앱 설치나 기기 연동이 간단한 일이지만, 스마트 기기가 낯선 고령자에게는 계정 생성부터 데이터 전송까지의 모든 과정이 심리적 스트레스이자 새로운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기기를 단순히 지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친절한 사용 가이드와 오류 발생 시 즉각 대처해 줄 지원 인력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병원 방문이라는 물리적 문턱을 낮추려다 자칫 새로운 ‘디지털 문턱’을 만들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기술이 사람의 생활공간으로 들어온다는 것
DCT의 흐름을 보다 보면 또 다른 관련 기술 트렌드가 떠오릅니다. 바로 사람이 기계를 찾아가는 대신 기술이 사람의 생활공간으로 스며드는 변화입니다.
집 안의 센서와 기기가 매번 조작하지 않아도 주변 상황이나 생활 패턴을 감지하는 앰비언트 인텔리전스(Ambient Intelligence)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함께 살펴볼 만한 주제입니다.
두 기술은 적용 분야는 다르지만,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는 본질적인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돌봄과 이동성이 중요한 고령사회에서 이러한 기술적 결합은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사람을 덜 움직이게 하는 기술
처음 ‘AI 기반 디지털 임상시험’이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는 아주 먼 미래의 기술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볼수록 제 관심은 AI라는 기술 자체보다 ‘사람’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는 횟수를 한 번이라도 줄여주는 기술, 이미 기록한 정보를 다른 시스템에 다시 적지 않아도 되는 연결 방식, 집에서 얻은 건강 정보를 안전하게 연구진에게 전달하는 시스템. 비록 눈에 확 띄는 화려함은 없을지라도, 몸이 불편한 환자의 외출을 덜어주고 가족의 간병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입니다.
기술이 얼마나 복잡하고 화려한가보다, “사람을 얼마나 덜 지치게 만드는가.” 분산형 임상시험을 살펴보며 남게 된 마지막 생각입니다.
📚 참고 자료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Conducting Clinical Trials With Decentralized Elements
분산형 요소가 포함된 임상시험에서 원격진료, 지역 의료기관, 디지털 기술 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다룬 FDA 최종 가이드입니다.
https://www.fda.gov/regulatory-information/search-fda-guidance-documents/conducting-clinical-trials-decentralized-element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Digital Health Technologies for Remote Data Acquisition in Clinical Investigations
웨어러블 등 디지털 헬스 기술을 이용해 임상시험 참가자의 데이터를 원격으로 수집할 때 고려할 사항을 다룹니다.
https://www.fda.gov/regulatory-information/search-fda-guidance-documents/digital-health-technologies-remote-data-acquisition-clinical-investigation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Source Data Capture from Electronic Health Records: OneSource
전자건강기록(EHR)의 구조화된 데이터를 임상시험 EDC로 전달하기 위한 OneSource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입니다.
https://www.fda.gov/science-research/advancing-regulatory-science/source-data-capture-electronic-health-records-ehrs-using-standardized-clinical-research-data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Electronic Source Data in Clinical Investigations
전자 임상 데이터의 신뢰성, 품질, 무결성 및 추적 가능성 등에 관한 FDA 가이드입니다.
https://www.fda.gov/regulatory-information/search-fda-guidance-documents/electronic-source-data-clinical-investigation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
Real-Time Clinical Trials
2026년 FDA가 발표한 실시간 임상시험 개념검증 및 파일럿 추진 관련 자료입니다.
https://www.fda.gov/news-events/press-announcements/fda-announces-major-steps-implement-real-time-clinical-trials
※ 이 글은 의료적 판단이나 특정 치료 방법을 안내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FDA 등 공공기관의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디지털 헬스와 임상시험 기술의 변화 흐름을 일반 독자의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IDiA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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